목차
개요: 《미나문방구》 – 과거와 화해하는 시간의 복원기
《미나문방구》는 단순한 향수 자극형 코미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개인적 실패와 가족, 사회적 기대라는 다층적 테마를 통해, 한 여성의 심리적 재구성을 정교하게 그려낸 성장 서사다. 감독 정익환은 주인공 ‘강미나’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성, 가족, 직업, 과거라는 네 가지 중심축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며, 문방구라는 공간을 정서적 충돌과 회복의 상징으로 활용한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문방구”라는 추억의 공간이지만, 그것은 단지 복고적 배경이 아니라, 강미나가 외면하고 도망치려 했던 과거와 마주하는 감정의 거울이 된다. “방구”라는 조롱섞인 과거의 별명, 동네 아이들의 놀림,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결국 사회적 관계에서조차 실패를 겪으며 좌천되는 미나의 상황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정서적 해체와 재구성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감독은 극 초반부터 미나의 폭주 장면을 통해 관객의 이입을 유도한다. 그녀의 외침, “왜 내가 아빠 때문에 방구가 돼야 돼!”는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가족 내 상처가 집약된 문장이며, 영화 전체의 핵심 명제를 함축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다시 문방구로 돌아가는 여정을 통해 점차 해체된다.
정익환 감독은 ‘문방구’라는 물리적 장소에 기억, 상처, 공동체의 상징성을 결합시킨다. 낡고 먼지 쌓인 오락기, 고물처럼 보이는 장난감, 그리고 ‘급매’라는 종이에는 단순한 폐업 위기의 문방구 이상으로, 주인공의 정체성 붕괴와 재건이라는 상징이 투영되어 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은 문방구 내부의 청소와 물건 정리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묘사되며, 이는 주인공이 자기 내면을 정화하고 회복하는 과정과 완벽하게 맞물린다.
또한, 영화는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반복적으로 미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교차시킨다. 이 교차는 감정의 증폭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 과거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되짚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플래시백 속의 어린 미나와 현재의 미나가 같은 공간에서 교차되는 장면은, 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영화적 장치로, 자아통합의 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미나문방구》는 궁극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싫어한 것과 닮아간다”는 모순적 진리를 인정하고, 그 닮음을 통해 사랑과 용서를 배워나가는 이야기다.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덧칠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회복하는 여정. 강미나의 서사는 그래서 특별하다. 그녀는 문방구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방구라고 불렀던 상처를 껴안고, 그 상처를 낳았던 공간을 수용함으로써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줄거리: 강미나, 과거의 낡은 간판 아래에서 다시 서다
《미나문방구》는 공무원 강미나가 한순간의 분노로 인해 정직 처분을 받고, 생전 처음으로 직장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고향은 낡고 퇴락한 문방구가 있는 작은 읍내. 그 문방구는 미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곳이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 “방구”라는 조롱 섞인 별명, 아버지의 불량식품 장사, 친구들의 놀림은 미나에게 고향을 ‘지워야 할 상처’로 각인시켰다.
그러나 문방구를 팔기 위해 잠시 내려온 미나의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빚더미에 올라 있는 문방구,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 제멋대로인 동네 아이들까지. 더군다나 새로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 ‘최강호’는 어릴 적 ‘왕따남’으로 미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이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그녀의 삶에 들어온다.
미나는 아이들을 문방구에서 쫓아내며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지만, 점점 그 아이들의 천진함과 필요 속에서 아버지가 왜 이 공간을 놓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문방구는 단지 장사가 아니라, 아이들과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정서적 허브였던 것이다.
동시에 강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교사로서 극복해보려 노력한다. 문제아 박소영을 감싸안으며 ‘폭탄은 옮기는 게 아니라 해체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하려 한다. 미나와 강호는 서로의 과거를 반추하며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이들과 함께 문방구를 다시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나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울로 돌아가 재기할 기회를 놓을 것인지, 아니면 이 문방구를 지키며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갈 것인지. 영화는 그녀의 내면적 성장과 선택을 중심으로 후반부로 나아간다.
결국 미나는 과거를 거부하는 대신, ‘방구’라는 별명마저 품에 안고 살아가는 법을 택한다. 아이들의 쉼터이자 추억의 교차점이었던 문방구는 다시 활기를 띠고, 미나는 그곳에서 자신을,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그렇게 “과거와 화해함으로써 현재를 받아들이는 용기”라는 주제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전달한다.
챕터 1: 떠나야만 했던 자리로 돌아온 여자 – 강미나의 감정 붕괴와 귀향
《미나문방구》의 도입부는 한 노인이 문방구 지붕에 오르다 추락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짧은 프롤로그는 단순한 사고 장면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다. ‘문방구’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이 아니라, 세대 간 기억과 시간의 축적이 담긴 장소이며, 그 장소에서 누군가가 ‘추락’한다는 것은 공동체적 기억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관객은 강미나라는 인물의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직장에서는 공무원으로, 연애에서는 한 남자의 100일 이벤트를 비웃으며 결국 그의 청첩장을 머리에 꽂아버리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거침없는 행동을 하지만, 내면에는 쌓인 분노와 억울함, 외로움이 겹겹이 들어차 있다. 그녀의 일련의 폭주—납세 독촉 중 발길질, 자동차 사고 유발, 남성 운전자에게 울부짖으며 성차별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은 단지 코믹한 장면이 아니라, 누적된 사회적 억압과 정체성 위기의 폭발로 읽힌다.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그녀가 지하철 플랫폼에서 과거의 연인 성훈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플래시백이다. “여기.. 자기가…”라는 대사 속 미소와 현실 속의 분노가 교차되는 이 장면은, 미나가 단순히 ‘차인 여자’가 아닌, 연애에서조차 도구화되고 폐기된 존재로 느꼈음을 함축한다. 그녀가 “이성훈 계장님! 결혼은 딴 여자랑 하면서 연애는 계속 저랑 하자뇨?”라고 고함치는 장면은, 미나의 자존감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직 처분을 받은 후 미나는 결국 고향으로 향한다. 이 귀향은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문방구’라는 장소는 미나에게 어린 시절, 즉 트라우마의 근원지이자 억압된 기억이 눌려있는 공간이다. 문방구를 팔아 아버지의 빚을 해결하려는 목적은 그녀에게 있어 현실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는 ‘과거를 지우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하지만 고향에 도착한 미나는 예상치 못한 현실에 부딪힌다. 문방구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었다.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는 여전히 그 가게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에게는 그 장소가 여전히 놀이와 추억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 속 “그날이 애들 운동회였어”라는 말은 미나의 트라우마가 단지 ‘아버지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책임감과 존재 가치의 증명이 필요했던 일이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감독은 복합적 정서를 표현한다. 미나는 자신이 “방구”라고 불리던 시절을 수치로 기억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던 시간이었다. 이 어긋난 기억의 불일치는, 결국 서로의 상처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한국 가족 구조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강미나의 귀향은 단지 고향 방문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과거의 상처를 복기하고 다시 바라보는 ‘내면의 여행’이다. 문방구 안의 먼지 낀 오락기, 바랜 장난감 상자, 구석에 놓인 운동회 사진은 미나에게 단지 낡은 물건이 아닌, 자신이 잊고 싶었던 시간의 잔재이자 상처의 잔영이다.
챕터 2: 문방구의 재개장 – ‘방구’라는 이름 아래 엇갈리는 기억과 진실
강미나가 문방구에 머물게 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이 갈등은 외적인 충돌뿐 아니라, 내면의 혼란, 공동체와의 마찰, 아버지와의 가치 충돌 등 다층적 형태로 확산된다.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문방구라는 공간이 단순한 추억의 장소에서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전장’으로 재편되는 순간이다.
문방구는 더 이상 ‘아버지의 공간’이 아니라, 미나에게도 물려받은 책임의 공간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장소를 수용하지 않는다. 미나는 아이들을 향해 “이딴 데 주인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라고 반문하며, 스스로를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녀의 냉소적인 태도는 단순히 문방구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과거의 미나’에 대한 자기혐오의 표현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이 갈등의 방아쇠를 당긴다. 문방구를 들락거리던 동네 아이들은 새로운 주인에게 친근감을 보이지만, 미나는 “안 팔아! 나가!”라는 외침으로 아이들을 내쫓는다. 그 이유는 단순한 짜증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다. 과거 그녀를 “방구”라 조롱했던 아이들의 기억이, 지금 이 문방구를 찾는 아이들 위에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심리는 ‘과거에 무시당했던 자신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공포와 맞닿아 있다.
여기서 감독은 플래시백 기법을 다시 활용한다. 어린 시절 미나가 겪었던 왕따, 조롱, 그리고 아이들의 무자비한 놀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재확인시켜주는 요소다. “방구네 아빠는 진짜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라는 아이의 말은, 단지 한 장난스러운 말이 아니라, 미나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완전히 파괴했던 말이다. 이 장면은 영화 속 가장 강렬한 심리적 충격의 순간이며, 현재 미나의 냉소와 거절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해명해준다.
이제 갈등의 범위는 확장된다. 단지 아이들과의 거리감뿐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미나가 차지하는 입지, 더 나아가 ‘문방구’라는 이름의 가치 자체가 쟁점이 된다. 동네 아이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며, 문방구는 자연스럽게 기능을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미나는 그 역할에 선뜻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납이다, 그거. 진짜 낄 때 손가락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강한 증거다.
이 시기, 또 하나의 주요한 갈등 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강호다. 어린 시절 ‘왕따남’으로 기억된 그가 이제는 교사가 되어 돌아왔고, 미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과 연결된다. 강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실패를 아이들을 가르치며 회복하려 하고, 문제아 박소영을 ‘전학이 아닌 해체’로 해결하겠다는 이상을 품는다. 그는 ‘폭탄은 옮기는 게 아니라 해체하는 것’이라며,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배제하기보다는 품고 해결하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나와 강호 모두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 애쓰지만,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강호는 자기 치유를 위해 공동체에 뛰어들지만, 미나는 공동체를 철저히 거부하고, 되레 아이들마저 배척한다. 그 차이가 둘의 대립과 충돌을 만든다. 특히 강호가 수갑을 찬 채 아이들에게 ‘경찰놀이’라 둘러대며 웃음을 주는 장면과, 문방구 안에서 미나에게 잡혀 온갖 물건으로 두들겨 맞는 장면은, 코믹한 외피 안에 두 인물 간 심리적 거리감을 풍자적으로 담아낸다.
갈등은 점차 해소될 조짐을 보인다. 미나는 아이들의 생생한 에너지와 필요를 통해 점차 문방구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발적 변화라기보다는, 계속되는 상황의 압박과 외부 환경에 따른 수동적 반응에 가깝다. ‘문방구를 팔고 싶지만, 팔 수 없는 상황’, ‘아이들을 외면하고 싶지만, 그들이 문을 두드리는 현실’ 속에서, 미나는 점차 중심을 잃는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미나의 감정이 더 이상 외부로만 표출되지 않고, 내부를 향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납 반지’ 에피소드나 ‘사랑이다, 아니다’ 뽑기 장면은 외적 분노가 내부 성찰로 방향을 전환하는 신호탄이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미나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미나의 내면은 ‘문방구를 없애야 한다’에서 ‘문방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로 이동하게 된다.
챕터 3: 문방구의 재정의 – 상처의 공간에서 회복의 커뮤니티로
영화 《미나문방구》의 후반부는 명확한 전환점을 맞는다. 초기에는 외부 갈등과 분노의 표출로 시작했던 미나의 행동이, 점차 내면의 상처를 돌아보는 감정의 여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감정 변화의 중심에는 ‘문방구’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다시 교차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문방구를 단순한 공간이 아닌 ‘미나의 자아’로 상징화한다. 초반 문방구는 먼지 쌓이고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며, 이는 곧 미나의 정서적 피폐함과 분열된 내면 상태를 반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나둘 문을 두드리며 다시 그곳에 들어오고, 불량식품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미나는 문방구가 과거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하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불량식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다. 이는 과거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아버지의 생업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상처를 물리적으로 마주하고 정리하는 ‘정화 의식’에 가깝다. 단순히 없애기보다는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미나의 심리 변화가 드러나는 상징적 행위다.
그 변화의 중대한 계기는 강호와의 재회와 관계 진전에서 비롯된다. 과거 왕따였던 강호는 이제 당당히 교사로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미나와 달리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그가 “폭탄은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미나가 외면했던 자기 내면의 폭탄(과거의 기억과 트라우마)을 해체하라는 은유적 충고로도 읽힌다. 즉, 강호는 단지 상대역이 아니라, 미나가 자기 성장을 위해 거쳐야 할 ‘거울 같은 존재’다.
이 둘의 관계는 초기엔 오해와 충돌로 시작되지만, 문방구라는 공동의 장소를 중심으로 교차하며 점차 이해와 협력의 서사로 바뀐다. 강호가 수갑을 찬 채 문방구에서 오락기를 하는 장면, 그리고 수갑을 보고 도망치는 미나의 반응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싸우다 정 붙이는 과정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충돌은 진지하기보다는 유머로 표현되며, 이는 무거운 감정 서사를 부담 없이 소화하게 해주는 감독의 유연한 연출 방식이다.
또한, 동네 아이들과의 관계도 극적으로 전환된다. 초기에는 미나를 향해 “괴물이다”, “알바다”라며 경계하던 아이들이, 점차 그녀를 인정하고 의지하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수용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미나는 점차 아이들을 단지 ‘손님’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주는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결국 문방구는 그저 아버지의 삶의 터전이 아니라, 미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되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후 중요한 장면은 ‘가게 매매 계약을 위한 부부의 방문’이다. 미나는 그들에게 “이건 고물상이지, 문방구가 아니다”라며 자신조차 부정했던 문방구를 비하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그녀가 문방구를 떠나지 못할 거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은 정리하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폄하하며 정당화를 시도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중적 심리 상태—떠나고 싶지만, 마음 한켠엔 붙잡고 싶은 욕망—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결정적인 변화는 문방구가 다시 아이들로 북적이며, 미나가 그들을 위해 물건을 챙기고 가격을 외우며, 때로는 장난처럼 꾸짖는 모습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더 이상 “방구”라는 이름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별명을 기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자기 부정에서 자기 수용으로 넘어가는 전환의 절정이다.
마지막으로 미나가 오락기 랭킹 1위의 이니셜 ‘K.B.G’를 보며 코드를 뽑는 장면은 복합적인 감정을 내포한다. 그 이니셜은 분명 아버지의 흔적이며, 동시에 미나가 부끄러워했던 유년기의 표식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 흔적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는 과거를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새로운 미래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성숙의 상징이다.
총평: 《미나문방구》 – 웃음과 눈물로 기억을 소환하는 감정의 타임머신
《미나문방구》는 단순한 코미디도, 단지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물도 아니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고, 오랫동안 외면했던 상처를 끌어안는 여정을 통해 내면의 복원을 완성해가는 섬세한 감정 드라마다. 정익환 감독은 과장되지 않은 유머와 날것의 감정으로, ‘기억의 힘’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펼쳐 보인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문방구’라는 낡은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 미나의 심리적 거울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폐허와 같은 문방구, 먼지 쌓인 오락기, 불량식품 바구니는 미나의 내면 그 자체이며, 영화는 그 공간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과정을 통해 그녀의 내면도 서서히 치유되는 구조를 갖춘다. 정형화된 갈등 구조 대신 일상의 누적된 감정들, 말 한마디에 스며든 상처들로 이야기의 밀도를 채워가는 방식은 한국형 성장 드라마의 전형을 넘어선다.
주연을 맡은 주인공 강미나 역의 배우는 감정 표현에 있어서 절제와 폭발을 절묘하게 오간다. 특히 지하철 플랫폼에서 과거 연인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 문방구 앞에서 아이들에게 분노하면서도 결국 그들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층위, 그리고 아버지와의 오랜 침묵을 마주하는 대목은 그녀의 내면 변화 곡선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인물은 단지 ‘열받은 여자’가 아니라, ‘억눌린 상처를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된 인간’으로 재정의된다.
감독 정익환은 연출 면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한다. 아이들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동네 풍경, 플래시백 속 시간의 질감, 강호와 미나의 어색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리듬감 있는 편집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그 밑바닥에 깔린 쓸쓸함을 잊지 않게 만든다. 특히 플래시백의 활용은 이 영화의 핵심 미학이다. 과거의 미나와 현재의 미나가 동일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장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들은 주인공의 내면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음악 또한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80~90년대 아이돌 스타들의 사진, 풍선껌 냄새, 종이인형, 그리고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장면까지, 하나하나가 사운드와 함께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며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향수는 단순한 회상 이상의 감정, 곧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보는 체험’으로 작동한다.
《미나문방구》는 테마의 일관성 면에서도 매우 우수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과 화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붙든다.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진정한 회복은 그 과거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꾸준히 강조한다. 미나가 문방구를 팔기 위해 돌아왔다가 결국 그곳에서 자신을 되찾고, 아이들과 아버지, 그리고 ‘방구’라는 과거까지 껴안게 되는 과정은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선 ‘정서적 구조’의 서사다.
또한 강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성장’이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괴롭힘을 당하던 존재였지만, 현재는 아이들을 품고자 하는 교사로 성장한 강호는 미나와의 대비 속에서 상호 반영되는 또 하나의 자아로 기능한다. 이로써 영화는 단일 인물 중심의 성장 서사를 넘어서, ‘공동체 속에서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결론적으로 《미나문방구》는 단순한 휴먼 코미디가 아닌, 상처받은 개인이 공동체와 과거를 통해 다시 자신을 회복해가는 감성의 여정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 속에, 당신이 가장 필요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