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 – 기억과 사랑이 교차하는 감성 멜로 영화의 정수


〈개요〉: 기억과 회복의 서정, 상실과 애틋함을 그리는 일상 판타지

영화 *《와니와 준하》*는 고요한 일상 속 감정의 파문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멜로 드라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니메이터 와니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준하가 동거하는 삶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겉보기엔 평범한 일상들이지만 그 안에는 크고 작은 감정의 균열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감독은 이 평범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영화의 주요 테마는 ‘기억의 귀환과 그것이 초래하는 내면의 흔들림’이다. 와니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며, 그녀의 회상 장면은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닌 ‘정서적 기억의 재현’으로 기능한다. 특히 와니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목격하거나, 과거의 장면이 현실 위에 투영되듯 펼쳐지는 장면들은 플래시백을 넘어선 심리적 판타지적 장치다. 이는 와니가 과거를 외면한 채 살고 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그 기억과 공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준하는 와니와 달리 현재에 충실한 인물로, 애정과 관심으로 와니의 닫힌 내면에 다가서려 한다. 그의 직업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곧 영화 전체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과거를 다시 쓰고 싶은 마음, 혹은 새로운 이야기로 현재를 덮고 싶은 바람. 이 둘의 조우는 일종의 감정적 교차점이 되며,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와 해방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감독은 공간의 연출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와니의 집은 기억의 창고와도 같은 장소로,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이 층을 이루며 혼재한다. 특히 풍경 소리, 종소리, 괘종시계와 같은 청각적 상징은 시간과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로 반복 사용되며, 이 집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 내면의 투사물임을 보여준다. 자연, 특히 비와 햇빛, 꽃잎과 나뭇잎 같은 유기적 이미지는 감정의 변화와 전환점을 시각화하는 상징이 된다.

이 영화는 “큰 사건이 없는” 서사의 힘을 믿는다. 대신 내면의 균열, 침묵 속의 감정, 사소한 말투와 시선 교환을 통해 인물의 내적 세계를 드러낸다. 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에드워드 양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동아시아적 미학의 맥락에 닿아 있으며, 관객에게도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경험형 감상’을 요구한다.

또한 영화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테마에 대해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접근을 시도한다. 사랑은 여기서 상처를 가리기 위한 피난처이자, 동시에 고통을 직면하게 만드는 거울로 작용한다. 특히 과거 남동생 영민의 존재는 와니가 현재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감정적 저지선으로 작용하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와니의 선택이 ‘현재에 머무르기 위한’ 진정한 자기 수용의 단계로 이어진다.

이렇듯 *《와니와 준하》*는 조용한 톤과 시적 이미지, 그리고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일상 속 숨은 상처와 회복의 과정을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멜로를 넘어선 감정적 판타지로, 시간과 기억, 사랑과 상실에 대한 사색을 담은 서정적인 영화로 자리매김한다.


〈줄거리〉: 서로의 고요 속에서 마주한 과거와 현재

영화 *《와니와 준하》*는 조용한 주택가의 오래된 2층 집에서 시작된다. 애니메이터 와니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준하는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두 사람은 익숙한 듯 보이지만, 각자의 내면에는 말하지 못한 상처와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와니는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과거 가족과의 갈등과 남동생 영민과 얽힌 복잡한 감정을 내면에 감춘 채 살아가고 있으며, 준하는 와니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녀의 벽에 조금씩 부딪힌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생활을 세밀하게 그리며, 와니의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슈퍼마켓에서의 짧은 대화, 식탁 위의 딸기, 빨래를 널고 물을 뿌리는 와니의 모습 등 일상의 조각들이 쌓이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깊어진다. 하지만 이 평온한 일상은 와니의 과거가 서서히 현재로 스며들면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준하가 와니의 전화를 대신 받게 되면서 그녀의 남동생 영민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작은 사건은 와니의 감정선을 흔들고, 억눌러왔던 기억들이 그녀를 덮친다. 플래시백 형식으로 삽입되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 영민과의 복잡한 감정 교류, 그리고 가족 사이의 거리감은 현재의 와니가 왜 그렇게 닫혀 있는지를 암시한다.

이와 동시에 준하도 자신의 꿈을 좇으며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한다. 그는 와니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와니는 준하에게 마음을 열고자 하지만,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결국 와니의 옛 친구 소양이 찾아오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와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소양의 휴학 고백은 와니에게 또 다른 거울이 되며, 그녀가 잊으려 했던 과거와 진지하게 마주할 시간을 만든다.

영화는 급작스러운 전개 없이,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과 그 틈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진폭을 통해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준하가 준비한 스파게티 저녁, 와니에게 선물한 모자,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이 쌓이며 결국 와니는 자신이 왜 이 집에서 준하와 함께 있는지를, 그리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챕터 1: 도입부 – 침묵 속에 깃든 공감과 거리〉

*《와니와 준하》*의 첫 장은 “일상”이라는 커튼 뒤에서 인물의 내면을 조용히 들춰낸다. 와니의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정서와 기억이 배어있는 ‘감정의 거처’다. 이 도입부에서 감독은 서사를 급하게 끌어가지 않고, 와니와 준하의 동거 생활을 반복적인 루틴 속에서 보여주며 두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를 드러낸다.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전환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와니의 외로운 기억이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그려지고, 이는 곧 실사로 전환되어 지금의 와니로 이어진다. 이 전환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중첩되어 있다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상징한다. 어린 와니의 고립감과 모자에 얽힌 추억은 이후에도 반복되며 와니의 정체성의 근원을 드러낸다.

현실의 와니는 과묵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집에서는 준하와 함께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대화를 하더라도 피상적이고 건조하게 흘러가며, 그녀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 준하는 그 틈을 메우려 애쓰며 농담을 던지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서적 거리를 좁히려 한다. 하지만 와니는 “그냥 같이 사는 사이”라는 말로 관계를 명확히 선 긋는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만한 연출은 ‘거실과 부엌’이라는 공유된 공간의 사용이다. 같은 공간을 함께 쓰지만, 서로 다른 시선과 감정이 흐른다. 준하는 와니가 원화부로 옮기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그녀의 재능을 아끼고 응원하지만, 와니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는 단순한 직업적 갈등이 아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라는 정서적 은유다.

감독은 ‘종소리’와 ‘풍경’이라는 소리를 도입부에서부터 반복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환기’를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특히 풍경이 울리는 장면은 감정적으로 중요한 순간들과 겹치며 관객의 무의식 속에 와니의 트라우마를 각인시킨다.

소품의 사용 또한 정교하다. 준하가 사온 딸기, 와니가 몽당연필을 항아리에 넣는 장면 등은 일상적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과거의 정서를 정리하거나 현재에 적응하려는 몸짓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와니가 노란 모자를 연상케 하는 여성용 모자를 선물 받는 장면은, 그녀가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서사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한편, 준하는 와니에 비해 밝고 적극적인 캐릭터지만, 그 역시 고독한 창작자다. 그가 슈퍼에서 꼬마아이를 태워주며 장난치는 장면은 그가 과거에 대한 미련 없이 현재를 살고자 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와니의 내면과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종종 벽에 부딪히며, 두 사람 사이에는 감정적 ‘깊이’의 차이가 존재함을 암시한다.

이 도입부의 갈등은 노골적인 충돌이 아니라 ‘눈치’와 ‘침묵’ 속에서 발생한다. 준하가 와니의 과거를 묻지 않고, 와니는 말하지 않으며, 둘은 서로에 대한 배려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거리를 만들어낸다. 이 침묵은 곧 영화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상처를 공유하지 않고도 진정한 사랑이 가능할까?

결국, 도입부는 이 두 사람이 어떤 ‘차이’를 지닌 채 함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서로를 좋아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사랑과 거리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상태. 감독은 이 미묘한 균형을 과장 없는 연출과 사실적인 대사, 사소한 행동의 반복으로 정교하게 구축하며, 이후 펼쳐질 감정의 지각변동에 대한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증폭시킨다.


〈챕터 2: 충돌 – 과거의 귀환과 감정의 파장〉

*《와니와 준하》*의 중반부는 억눌려 있던 과거가 현재를 침범하면서 인물 간의 정서적 충돌이 격화되는 시점이다.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고요하게 진행되지만, 와니의 내면에서는 정체되고 있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영민’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준하가 우연히 응답 전화를 통해 받은 통화는 와니의 오랜 침묵을 깬다. ‘동생 영민이 돌아온다’는 말은 곧 와니에게 ‘과거의 귀환’을 의미하며,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중요한 것은, 이 통화 하나로 인물의 태도가 급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용히 퍼지는 물결처럼 와니의 표정, 말투, 행동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감독은 이러한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대사보다 시선과 정적을 통해 연출한다.

와니가 모자를 받아 들고 잠시 정지해 있거나, 준하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며 포크로 스파게티를 말아먹는 장면 등은 그녀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침묵의 연기’로 기능한다. 이처럼 말없이 진행되는 심리 드라마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추측하게 만들며, 이는 오히려 더욱 몰입도를 높인다.

영민이라는 인물은 직접 등장하기 전까지도 극 중에서 지속적으로 그림자처럼 언급된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하는 플래시백은 와니와 영민의 관계가 단순한 가족애나 우애가 아닌, 훨씬 더 복잡한 정서의 결합임을 드러낸다. 특히 어린 시절 와니가 영민에게 ‘여자 냄새’라는 말을 들으며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장면,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던 장면은 와니가 그에게 품고 있던 감정이 애정과 상처, 혼란의 혼합체였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과거의 장면들은 마치 현재의 와니가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제시되며, 그녀의 심리적 상태와 분리되지 않은 채 전개된다. 현실의 시간선과 회상의 시간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 구조는, 와니의 내면에 시간이 멈춰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감정에 붙잡혀 있으며, 그 감정은 아직도 그녀의 선택과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양의 방문은 또 하나의 촉매제다. 오랜 친구이자 후배인 소양은 와니와는 정반대의 에너지로, 대화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와니가 소양에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자기 부정과 체념의 감정을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준하는 여전히 와니 곁에 머물며 일상을 함께하지만, 서서히 그녀의 벽을 인식하고 당황해한다. 준하가 그녀의 동생 이야기에 “나, 가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장면은 와니와의 관계에 자신이 ‘침입자’처럼 느껴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러한 감정은 와니가 과거에 대한 방어기제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은 상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와니가 비를 맞으며 과거의 가족 장면과 마주하는 환상 장면이다. 어린 와니와 영민, 부모의 등장, “이제부턴 내가 네 엄마다”라는 대사는 와니의 정체성이 뒤흔들렸던 기점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며, 그 충격이 현재의 와니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는 준하의 존재는, 말없이 그녀를 받아주는 현재의 ‘안식처’를 상징한다.

결국 이 챕터는, 와니가 왜 준하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열지 못했는지, 왜 과거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동시에 준하 또한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체감하게 되며, 그들 사이의 미묘한 온도차가 충돌로 변모해간다.


〈챕터 3: 절정 – 진실의 순간, 선택의 갈림길〉

영화 *《와니와 준하》*의 절정은 격렬한 외부 사건 없이도 인물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대격변을 통해 완성된다. 이는 이 영화가 지닌 가장 독창적인 미학이자 서사 전략이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고요한 선택의 순간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와니의 ‘기억과의 화해’가 있다.

이 장에서 준하는 자신의 시나리오 작업에 전념하면서도, 여전히 와니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하려는 사람이며, 자신이 그녀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와니는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영민의 귀환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일깨우고, 그녀를 19살 소녀의 감정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와니가 침대에 누워 악몽에 시달리다 준하의 품으로 파고드는 장면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도피’와 ‘의존’이라는 정서가 결합된 몸짓이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두 가지 시제를 중첩시켜 제시한다. 하나는 현재의 와니와 준하의 관계, 다른 하나는 과거의 와니와 영민의 복잡한 정서적 유대다. 특히 과거의 영민이 와니의 방에 들어와 “왜 냄새가 다르지?”라며 목덜미에 얼굴을 가까이 대는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남매애를 넘어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었다는 걸 강하게 암시한다. 와니는 그 감정을 규정하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아왔고, 그 미결의 감정이 지금의 ‘준하와의 관계 형성’을 가로막는다.

감정이 극대화되는 또 하나의 순간은, 소양의 등장을 통해 현실에 대한 와니의 책임감이 시험당하는 장면이다. 와니는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지만,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지금 ‘결정’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소양은 학교를 휴학하고 갈 곳이 없어졌으며, 와니는 그런 그녀를 외면할 수 없다. 이 설정은 와니가 더 이상 감정을 유예할 수 없음을, 그리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음을 은유한다.

정점은 스파게티 식사 장면에서 드러난다. 준하가 준비한 와인의 밤, 와니는 처음으로 눈에 띄게 긴장한 표정을 보인다. 준하가 모자를 건네며 “흐린 날엔 쓰고 다녀”라고 말하는 순간, 와니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지만, 그녀의 눈빛은 복잡하게 흔들린다. 모자는 단순한 선물이 아닌, 와니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모자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자, 그녀가 더 이상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감정’을 대표한다.

그러나 준하가 무심코 말하는 “동생 오기 전에 나 가야 되는 거 아냐?”라는 말은 와니의 감정을 급격히 무너뜨린다. 와니는 평정을 가장하면서도 “그 사람, 여기 안 있을지도 몰라”라며 과도하게 방어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와니가 아직도 감정적으로 영민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며, 준하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의 발현이기도 하다.

결국 준하와 와니 사이에 잠시나마 놓였던 안정감은 와니의 내면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흔들리게 된다. 이때 주방 천장에서 떨어지는 스파게티 면발과 괘종시계의 소리는 무심한 듯 일상을 흔드는 ‘우연의 폭발’을 연출하며, 마치 감정의 무의식이 현실로 새어나온 듯한 연출로 절정을 강조한다.

카메라는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가, 19살의 와니와 영민의 관계에 집중한다. 자전거를 타고 와니를 마중 나오는 영민, 그때의 손짓, 시선, 어깨에 닿는 손의 감각. 이 모든 요소는 와니의 정체성과 선택의 뿌리를 구성하는 조각들이다. 영민과의 기억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이유는 그 감정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사랑 같지만, 죄책감과 얽히고, 따뜻하지만 두려움을 동반한 감정.

준하는 끝까지 와니의 곁을 지키며 묻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와니는 과거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준하라는 ‘현재’를 받아들일 것인가. 영화는 이 갈등을 폭발적인 결말이 아닌, 느릿한 흐름과 시적인 이미지로 정리한다. 마치 감정의 마디마디를 어루만지듯 조용히 흘러간다.

이처럼 절정부는 주인공이 외부 세계보다 더 격렬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과정을 통해 ‘사랑’과 ‘기억’이라는 주제에 근접한다. 와니가 선택하는 길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지만, 그녀가 다시 ‘잠들지 않고 깨어난 채’ 준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총평: 정적인 서사 속에 피어나는 감정의 파문〉

*《와니와 준하》*는 격렬한 플롯이나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감정의 밀도와 섬세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드문 영화다. 이 작품은 그저 ‘조용한 사랑 이야기’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 구조를 지닌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직선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서로를 향해 걷지만 단번에 다가서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의 간극은 이 영화의 핵심 정서이자 주제다. 그리고 바로 그 미묘한 간극이 영화적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낸다.

감독은 인물 간의 대화보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을 때의 정적과 시선, 그리고 공간의 움직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동아시아 정서의 연출 문법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에게 감정의 여백을 남기며,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인물의 생각과 상처를 ‘추측하게’ 만든다. 감정은 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조명, 사운드, 미세한 표정 변화 속에서 증식되고 확장된다.

연기적으로는 김희선(와니 역)과 주진모(준하 역)의 절제된 연기가 중심을 잘 잡아준다. 김희선은 자칫하면 감정 표현이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와니라는 인물을 절제된 표정과 낮은 톤의 대사 처리로 더욱 설득력 있게 구현해냈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감정 변화의 미묘한 표현은, 그녀가 단지 ‘멜로 여주인공’을 넘어 복잡한 심리를 품은 입체적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주진모 역시 밝고 유쾌한 외면 속에 묵직한 책임감과 진심을 담아, 와니의 고통을 감싸는 인물로 그려낸다. 그는 결코 와니를 재촉하지 않고, 대신 곁에서 기다리는 태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형태’를 제시한다.

또한, 영화의 미술과 사운드 디자인은 극 중 인물의 내면을 시각화하고 청각화하는 데 탁월하게 기여한다. 와니의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한다. 낡은 괘종시계, 풍경의 종소리, 벽을 타고 자라는 담쟁이 덩굴, 반쯤 채워진 몽당연필 병 등은 모두 와니의 내면 상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 공간은 단지 현실의 집이 아니라, 와니가 갇혀 있던 기억의 감옥이며, 동시에 치유의 무대다.

사운드는 감정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나 트럼펫 솔로 연주가 플래시백 장면과 함께 사용되며, 서사적 전환과 감정적 파고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준다. 괘종시계의 울림은 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을 상징하며, 스파게티 면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소리는 감정의 무의식적 폭발을 형상화하는 듯하다.

장르적으로 보면 *《와니와 준하》*는 멜로드라마라는 틀에 판타지와 심리극의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한 독특한 하이브리드다. 플래시백과 환상, 혹은 현실에 중첩되는 과거 영상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심리적 시간 여행이다. 이로써 영화는 감정의 심연을 탐색하는 서사적 실험을 감행하며, 멜로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넓힌다. 이는 이와이 순지《러브레터》, 에드워드 양《하나 그리고 둘》 같은 작품들과도 정서적 친연성을 갖는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과거까지 끌어안는 것”이며, “기억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현재의 사랑에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와니는 영민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준하와 공유하는 대신, 자신이 감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관계를 허용한다. 이 선택은 현실적이며, 동시에 아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서사’로 읽힌다.

*《와니와 준하》*는 조용히 머물지만, 오랫동안 남는다. 그것은 이 영화가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여운이며,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감정을 건네기 때문이다. 빠르게 휘발되는 감정의 소비가 아닌, 천천히 곱씹는 관계의 의미를 탐색하는 이 영화는 오늘날의 한국 멜로 영화에서 보기 드문 정서적 깊이를 품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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