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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티끌모아 로맨스』 – 코미디의 껍질 속에 숨겨진 세태 풍자와 생존의 연애학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2011)는 김정환 감독이 연출한 현실풍자 로맨틱 코미디로,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2010년대 초반 대한민국 청년 세대의 생존기와 계급적 갈등, 경제적 박탈감, 그리고 인간 관계 속에서 교환되는 미묘한 심리 게임이 교차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티끌 모아도 티끌인 시대’의 경제적 무력감과 감정적 소비의 딜레마를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빈 병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 구홍실과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은” 천지웅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자 처한 상황은 심각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절박함이 아닌 블랙코미디적 톤으로 그려낸다. 이를 통해 감독은 비극적인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전통적인 코미디 장르의 미덕을 계승하면서, 현대 사회에서의 ‘연애’가 어떻게 생존 전략의 일부로 기능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지웅은 88만원 세대의 전형적인 청년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그는 “면봉만큼도 연봉 욕심 없다”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순응하려 하지만, 정작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진 인물이다. 반면 구홍실은 폐가에서 철제 도시락을 긁어모아 되파는 전략가이자, 재개발 보상금 수령을 위해 임대차계약까지 위장할 줄 아는 생존형 인간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대척점에 세우는 동시에, 그들이 점점 닮아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이 사람을 닮게 만든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또한 이 작품은 ‘빈곤한 청춘’이라는 테마를 로맨틱하게 포장하는 대신, 그것의 치졸함과 궁핍함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가령, 지웅이 편의점에서 콘돔을 훔치려다 50원이 모자라 당황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극단적 경제난의 씁쓸함을 강조하는 블랙유머다. 이와 같은 설정은 연애와 성마저도 경제 논리로 환산되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감독 김정환은 영화 전반에 걸쳐 ‘교환 가치’와 ‘소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 관계를 설계한다. 홍실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폐품 수거의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조차도 소유와 가치에 따라 소비되고, 처분되며, 때론 재활용된다는 냉정한 현실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 테마이자, 자본주의 시스템 속 개인의 존재론적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언술이다.
비주얼 측면에서도 영화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벗어난다. 비닐하우스 같은 옥탑방, 폐가, 재개발 사무소, 고속도로 위 다마스 등의 공간은 모두 캐릭터의 심리 상태와 경제적 지위를 반영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다마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도시와 변두리, 비정규적 삶과 꿈이 교차하는 ‘움직이는 삶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티끌모아 로맨스』는 달콤한 로맨스를 기대한 관객에게 일침을 놓는다. 영화는 연애를 감정이 아닌 ‘프로젝트’로, 사랑을 ‘거래의 연장선’으로 다룬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감정은 존재하며, 그 모순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다. 이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플랜맨>과 같은 타 장르 로맨스와 비교해볼 때, 보다 현실에 밀착한 정서와 개그 포맷으로 승부하는 방식이다.
결국 『티끌모아 로맨스』는 “사랑도 생존이다”라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달하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맥락과 인간적인 고뇌를 놓치지 않는 균형감각 있는 작품이다. 감각적인 대사와 현실적인 캐릭터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웃기면서도 아픈 장면 구성은,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사회적 풍자극으로 읽히게 만든다.
줄거리 요약: 궁핍한 도시에서 맞붙은 두 생존자, 사랑 아닌 거래의 연대기
『티끌모아 로맨스』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두 청춘이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동거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천지웅(송중기 분)의 백수 생활로부터 출발한다. 신문을 찢어 만든 이력서와 면봉만큼도 안 되는 자존심, 그리고 도피처 같은 자취방. 그는 누구보다 평범하고 무기력한 청년이다. 한편, 구홍실(한예슬 분)은 일용직 청소, 재활용품 수거, 폐가 임대 사기까지 일상을 ‘거래’와 ‘수익’의 개념으로 살아가는 독립형 생존자다. 이 두 사람은 지웅의 자취방에서 ‘세입자와 집주인’으로 처음 얽히게 된다.
초기 갈등은 매우 현실적이다. 지웅은 월세 몇만 원을 아끼기 위해 계약서 없이 살다가, 홍실에게 들이닥친 퇴거 요구에 위기를 맞는다. 이에 지웅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위장 임차인 계약서’를 제안하고, 홍실은 이를 빌미로 반값 월세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 동거는 단순히 공간의 공유가 아니라, 이들의 가치관 충돌을 예고하는 ‘공존 프로젝트’다.
동거 생활은 곧 불협화음으로 이어진다. 홍실은 지웅의 무기력과 정리 안 된 생활 습관을 혐오하고, 지웅은 홍실의 억척스러운 행동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점차 ‘돈벌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서 의기투합하기 시작한다. 지웅은 홍실이 운영하는 재활용 사업에 동참하게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실험을 벌인다. 이 과정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존재의 효율성’에 대한 냉소적 묘사다.
영화의 중반 이후, 지웅은 과거의 실패를 고백하며 점차 자존심보다 현실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홍실은 지웅의 인간적인 면모에 의외로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재개발 보상금을 받기 위한 임대 계약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도구화’하며 감정적 균열을 겪는다. 특히, 홍실이 지웅을 ‘자신의 재산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명확한 선을 그으며 후반부로 접어든다.
결국 두 사람은 사소한 사건(보증금 사기, 폐지값 논쟁, 성적 긴장감 등)을 통해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동거 생활은 종결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각자는 조금씩 변화한다. 지웅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행동하고, 홍실은 인간적 유대의 가능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다시 조우하는 순간은 완벽한 해피엔딩도, 차가운 이별도 아닌, ‘불완전한 연대’로 귀결된다.
이처럼 『티끌모아 로맨스』는 단순한 동거 로맨스가 아니라, 생존이라는 이름의 로맨틱 프로젝트다. 그들은 연애하지 않고도 연애 이상의 에너지를 교환하고, 사랑 없이도 사랑만큼 복잡한 감정선을 공유한다. 줄거리는 희극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조차 빈곤한 청춘’이라는 비극이 숨어 있다.
챕터 1: 도입부 – 지웅과 홍실의 첫 만남, 현실 풍자
『티끌모아 로맨스』의 도입부는 한국 청년 세대의 현실을 블랙코미디적 시선으로 그려낸다. 천지웅이라는 백수 청년은 고시원보다 좁은 자취방에 살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문을 찢어 이력서를 만들고, 버려진 TV를 고쳐 보려는 시도를 한다. 그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지웅의 일상에서 출발해 관객이 곧바로 그의 무기력함에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연출한다. 특히 반복되는 면접 실패 장면과 현실에 체념한 듯한 내레이션은 ‘노력으로 아무것도 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배경 인식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반면 구홍실은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녀는 아침마다 동네 폐가를 순찰하고, 재개발 보상금을 노리는 계약서를 위조하며, 고물상과 가격 협상을 벌이는 생존형 전략가다. 그녀의 공간은 낡은 다세대주택이지만, 그 안에서의 태도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계산적이다. 이처럼 감독은 초반부터 두 인물을 ‘수동적 이상주의자’와 ‘능동적 현실주의자’라는 대척점에 배치하면서, 관객이 이들의 충돌과 협업에 흥미를 갖게 만든다.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지웅이 살고 있는 자취방의 주인이 바로 홍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는 불법 점유 상태의 그를 강제 퇴거시키려 한다. 이때 지웅은 “계약은 없지만, 나도 인간인데 그렇게 쉽게 버려지냐”고 반발하고, 홍실은 “계약서도 없으면서 뭘 믿고 살아?”라고 되받아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집 문제를 넘어, ‘계약’과 ‘신뢰’, ‘소유’와 ‘존재’라는 현대 자본주의 핵심 개념을 대사에 녹여낸 풍자다.
초반부의 공간 설정도 매우 전략적이다. 지웅이 살고 있는 방은 천장이 낮고 벽지가 뜯겨져 있으며, 바닥에는 버려진 전자제품과 라면 쓰레기가 굴러다닌다. 이 공간은 그의 자존감과 사회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반대로 홍실이 관리하는 재개발 구역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폐허의 이미지로, 그 역시 사회적 경계에 선 인물임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모두 ‘정식 시스템’ 바깥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웅은 시스템에 실패한 인물이고, 홍실은 시스템을 우회해 살아남는 인물이다.
도입부의 유머는 진지한 현실을 감추는 위장막처럼 기능한다. 예를 들어, 지웅이 월세를 내지 못해 주인 몰래 전기선을 끌어다 쓰거나,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거울 앞에서 최면을 걸듯 “난 할 수 있다”를 반복하는 장면은 단순한 개그가 아니다. 그것은 청춘의 자기 위안이며, 사회적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 버티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홍실 역시 폐지를 모으며 “돈 안 되는 물건은 없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그녀의 세계관이기도 하면서, 이 사회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간조차도 ‘돈 되는가’를 기준으로 취급되는 시대의 비판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결국 챕터 1은 지웅과 홍실이 ‘계약서 없는 관계’로부터 시작해, 서로를 이해하거나 오해할 준비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엮이게 되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그들의 출발은 사랑이 아닌 생존이다. 이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며, 이 영화가 장르적 공식을 전복하려는 첫 시도이기도 하다.
챕터 2: 충돌부 – 생존 전략, 위선과 욕망의 협업
『티끌모아 로맨스』의 중반부는 두 인물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들의 협업은 신뢰가 아니라 이해타산에 기반한다. 이 챕터는 그들의 동거가 어떻게 ‘경제적 연합’의 형태로 발전하고, 그 속에서 위선과 감정, 현실적 욕망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날카롭게 해부한다.
지웅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홍실은 폐가 보상금 사기를 위해 지웅을 ‘위장 세입자’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들의 관계는 이때부터 단순한 하숙이 아니라, 철저히 ‘계약과 목적’에 의한 거래로 재정립된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계약서’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서로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감정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형식적 거리감은 곧 허물어지고, 서로의 속내와 허점이 드러나면서 진짜 충돌이 시작된다.
홍실은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지웅은 이 계산 속에서 자기 존재의 ‘쓸모’를 발견하려 한다. 그가 폐지를 줍고, 홍실의 물건 정리 시스템에 참여하며 점차 주도성을 갖기 시작하는 장면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지웅은 ‘사랑받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면’ 자신이 여전히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착각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반면 홍실은 그를 도구로 보려 했던 자신에게 인간적인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의식적으로 경계한다. 이처럼 두 인물의 내적 변화는 명확한 반비례 곡선을 그리며, 감정이 협업의 벽을 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정은 시스템 안에서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들의 관계를 둘러싼 외부 조건—폐가 계약 만료, 동네 철거 예고, 돈을 둘러싼 사소한 갈등—은 협업 구조에 끊임없이 균열을 만든다. 특히 결정적인 사건은, 지웅이 보증금을 따로 챙기려다 이를 들키는 장면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다’는 무언의 합의가 무너지는 순간이자, 감정과 생존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 장면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실용적 협업이 아닌, 정체성과 진심이 시험대에 오르는 ‘내면의 격돌’로 전환된다.
감독은 이 챕터에서 욕망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성적 긴장감, 이성적 매력, 감정적 동요 등은 모두 위선과 계산의 언어로 코팅되어 표현된다. 예를 들어, 지웅이 홍실의 침대에 몰래 들어가는 장면은 로맨틱한 설정이지만, 실제로는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이 관계를 확실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본능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관객은 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경제적 불안과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이 챕터의 또 하나의 미덕은 ‘웃기지만 슬픈’ 구조를 탁월하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마스를 몰고 다니며 재활용품을 줍는 장면이나, 둘이 폐지를 팔기 위해 경쟁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웃음 속에 스며든 치열한 생존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웃픈’ 감정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 된다.
결론적으로, 챕터 2는 『티끌모아 로맨스』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서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파트다. 협업이라는 포장을 한 연대는 결국 개인의 욕망과 위선에 의해 깨지기 마련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면서도 동시에 외로운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충돌은 단지 사건의 갈등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챕터 3: 절정부 – 정체성의 노출과 관계의 전환
『티끌모아 로맨스』의 절정부는 인물들이 더 이상 자신의 위장된 정체성과 감정을 유지할 수 없는 지점, 즉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구간은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고, 관계의 재정의가 불가피해지며, 이야기 구조상 가장 높은 긴장과 몰입을 요구하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다.
홍실과 지웅은 어느덧 ‘계산된 동거’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를 감정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은 순수하게 흐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도구로 인식하던 초기의 계약관계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절정부에서는 이 ‘감정과 거래의 경계’가 붕괴되며, 결국 두 인물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핵심 전환점은 정체성의 노출이다. 지웅은 홍실에게 “너한텐 사람이 다 돈이지?”라고 따져 묻고, 홍실은 “너는 나보다 더 치사해”라며 맞받아친다. 이 장면은 각자가 감추고 있던 본심, 곧 상대를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두려워했던 감정을 드러내는 고백이자 자백이다. 영화는 이들의 말다툼을 감정적으로 고조시키는 대신, 차분하고 절제된 톤으로 연출하며, 관객이 이 장면을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부정과 자기인식의 순간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감정적 극점은 폐지 사업 실패와 재개발 계약 무효화라는 외부 사건과 동시에 일어난다. 이는 감독이 설정한 구조적 장치로, 인물 내면의 붕괴를 외부 환경의 붕괴와 병렬로 배치하여 감정의 파괴력을 극대화한다. 지웅은 현실의 벽에 무너지고, 홍실은 자신의 세계관이 더 이상 지웅에게 통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두 인물 모두가 자신의 ‘쓸모’를 재정의하게 되는 지점이며, 이때부터 이들의 관계는 실용적 거래에서 실질적 감정의 가능성으로 전환된다.
시각적으로도 이 장면은 변화가 두드러진다. 초반의 폐허와 다마스, 고물상, 옥탑방 등 무기력한 공간에서 벗어나, 인물들은 도심 한복판 또는 고속도로 위 같은 확장된 공간으로 이동한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지웅과 홍실이 다마스 안에서 벌이는 마지막 대화는, 좁은 공간에 갇힌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감정의 밀폐 실험실’이다. 이곳에서 이들은 처음으로 거래가 아닌 감정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 챕터의 감정적 승리는 ‘사랑의 시작’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감정을 고백하거나 관계를 규정짓는 말을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감정이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행위들—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침묵,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짧게 마주치는 장면은, 명확한 결론 대신 불완전하지만 진실된 감정의 흔적만을 남긴다. 이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피하고, 현실적인 관계의 불명확성과 유동성을 반영한 연출이다.
결국 챕터 3는 『티끌모아 로맨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완성한다. 사랑은 경제적 거래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조차 몰랐던 욕망과 결핍을 마주하게 된다. 이 절정부는 그런 진실이 드러나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영화는 이 불편함을 감상적인 회피 없이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속에서 관계의 본질을 새롭게 그려낸다.
총평: 웃음 속의 불편함, 연애를 통해 조명한 자본주의 생존기
『티끌모아 로맨스』는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외피를 입고 시작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영화는 웃음 뒤에 불편함을, 연애 뒤에 생존을, 그리고 관계 뒤에 자본주의의 구조적 병리를 심도 깊게 담아낸 ‘현실 풍자극’에 가깝다. 김정환 감독은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를 피하고, 대신 “이 시대에 연애는 가능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코미디의 장르 문법 속에 풀어낸다.
우선 연출의 가장 큰 미덕은 **“톤의 이중성”**이다. 영화는 겉으로는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흘러가며, 대사와 상황 유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인물들의 상황과 정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폐지 수거, 재개발 보상금, 무단 점거와 같은 설정은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는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이중적 연출은 블랙코미디 장르의 정석에 충실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빈곤한 청춘 세대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만든다.
연기 측면에서 송중기와 한예슬의 호흡은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송중기는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소년미’를 버리고, 무기력하고 다소 찌질한 청년상을 실감나게 구현했다. 특히 작은 제스처 하나, 어눌한 말투, 의욕 없는 눈빛으로 현실에 치인 청춘의 초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한예슬은 다소 ‘비호감’으로 시작되는 캐릭터 홍실을 정교한 조절로 살아 있는 인물로 탈바꿈시킨다. 그녀의 캐릭터는 과장된 억척녀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단한 전략가’로서 설득력을 가진다. 이처럼 두 배우는 각각의 방식으로 ‘살아있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스토리 구조상 이 영화는 세 개의 국면으로 명확히 나뉜다: (1) 계약된 관계, (2) 감정의 혼선, (3) 진심의 고백 없는 결론. 이러한 구조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깨트리면서도 관객에게 긴장과 몰입을 유지시킨다. 특히 마지막까지 ‘사랑한다’는 말조차 없이 관계의 여운만 남기는 선택은, 현대 연애의 유동성과 불완전성을 가장 현실적으로 포착한 장면이다. 감독은 결코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 스스로가 이들의 관계를 정의하게끔 열린 해석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성숙한 시선의 작품이다.
메시지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단순한 ‘연애의 어려움’ 이상을 다룬다. 영화 속 모든 대사와 행동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상품화’되고, ‘쓸모’에 따라 대접받으며, 심지어 감정마저도 거래되는지를 보여준다. 홍실이 말하는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어”라는 대사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랑, 우정, 연대 모두가 경제적 가치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는 시대—이 영화는 그 시대의 민낯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또한 공간 연출 역시 메시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옥탑방, 폐가, 고물상, 다마스—이 모든 장소는 주인공들의 사회적 위치를 상징한다. 특히 다마스는 움직이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유랑의 메타포’이며, 이는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이동성과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이 공간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 아닌, 언제나 인물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따라가며, 관객에게 그들의 현실을 ‘체험하게’ 만든다.
장르적으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름 아래 블랙코미디, 사회극, 심리 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오! 브라더스>, <스캔들> 같은 기존 한국 코미디의 전통 위에, <연애의 온도>나 <나의 PS 파트너>처럼 현실적인 연애를 조명한 작품들과도 궤를 같이 하면서도, 이 영화는 더 직접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결국 『티끌모아 로맨스』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이 중심이 아닌, 그러면서도 끝내 ‘사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보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로맨스 장르에서 듣고 싶은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