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줄거리와 해석 – 송강호의 명연기로 완성된 실화 법정 영화


개요: 『변호인』 – 한 인간의 각성과, 정의라는 이름의 용기

영화 변호인은 2013년 양우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한국 현대사 속 한 인물의 내면적 변화를 정면으로 응시한 정치 사회 드라마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기 변호사 시절’을 모티프로 하여, 한 평범한 세무 전문 변호사가 ‘부림 사건’이라는 국가 폭력의 현장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인물 전기나 법정극을 넘어서, “법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본질적 드라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송우석(송강호 분)은 고졸 출신으로 사회에서 무시당하던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집요하게 ‘돈 되는 사건’을 맡으며 점차 성공한 세무 변호사로 자리잡지만, 그는 여전히 사법 체계나 정치적 정의에는 무관심한 인물로 설정된다. 그러나 과거 자신에게 밥을 주던 국밥집 사장의 아들이,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고문당하고 억울하게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송우석의 내면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킨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균열의 확대’를 추적한다.

감독은 이 변화 과정을 매우 치밀하게 설계한다. 송우석은 처음에는 자신과 직접 연관된 사람의 일에 의무감을 느껴 개입하지만, 점차 ‘나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이 자각의 결과로 그는 판사, 검사, 동료 변호사 모두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자신의 생계, 명예, 심지어 안전까지도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윤리적 인간으로서의 각성을 그린 현대적 서사로 기능한다.

영화의 미장센 또한 이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초반부에서 송우석의 삶은 단출하고 실용적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좁은 사무실, 판자촌 같은 가정환경은 그의 출발점을 현실적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부림 사건 이후의 장면들은 조명이 어두워지고, 군사 정권의 억압적 기조를 반영한 회색 톤으로 시각적 정서를 통제한다. 이 톤 변화는 영화의 주제적 전환과 정확히 맞물린다. 특히 법정 신에서는 압도적인 공간 구성을 통해 인간 대 국가 권력 간의 위계 차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상징적인 장치도 영화 곳곳에 삽입된다. 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송우석이 인간적 연대를 처음 경험한 장소이며, 후에 그 국밥집 아들이 고문당하면서도 ‘송변호사님만은 믿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인간적 책임의 무게를 강하게 환기한다. 또한 그가 처음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때, 신문을 베개 삼아 자며 들었던 방송에서 ‘국민을 위한 법조인’이라는 말은, 후반부에 그가 진짜 국민을 위해 싸우는 존재로 변모하는 데에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변호인은 ‘정의’와 ‘법’이라는 키워드를 영화 내내 변주한다. 송우석의 질문은 단순하다. “법이 정말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 맞다면, 왜 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한 인물의 정서적 여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방식이야말로 관객의 몰입과 동의를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다.

이처럼 변호인은 단순히 ‘노무현 영화’라는 틀을 넘어, 보편적인 ‘시민의 각성’ 이야기로서 기능한다. 그것은 현실에 침묵하던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정의를 위해 싸우게 되는 서사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법정 드라마의 카타르시스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평범했던 인물이 가장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는 순간, 관객의 마음속에서도 비슷한 용기가 움트기 때문이다.


줄거리 요약: 정의 앞에서 침묵을 거부한 한 인간의 성장기

영화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고졸 출신 송우석(송강호 분)은 사회의 편견과 무시 속에서도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인물이다. 그는 ‘돈이 되는 사건’에 집중하며 세무 전문 변호사로 빠르게 성공한다. 철저히 실용주의적이고, 정치나 인권 이슈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며 “법은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의 인생 목표는 오직 돈을 벌어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그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줬던 식당 주인 ‘곽사장’(김영애 분)의 아들 진우가, 반정부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다. 부림 사건으로 알려진 이 고문 조작 사건은 송우석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진우는 잔혹한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고, 재판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곽사장이 도움을 청하자 처음엔 주저하던 송우석은 결국 이 사건을 맡게 된다.

그는 법리적으로 완벽한 방어 전략을 펼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고, 고문 정황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법정은 이미 정권의 편이었고, 증거는 무시되며 검찰은 정치적 프레임을 강화하는 데만 몰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우석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진우와 같은 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재판을 넘어 ‘정의 그 자체’를 변호하기 시작한다.

법정에서 검사가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송우석은 “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친다. 이 한 마디는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집약하는 명대사이자, 한 인간이 진정한 ‘법조인’으로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는 단지 무죄를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체제에 질문을 던지고, 억울한 시민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영화는 진우와 함께 연행된 다른 대학생들도 묘사하면서, 이 사건이 단지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 전체가 겪었던 고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진우는 유죄 판결을 받지만, 송우석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부당한 사법체계를 고발하며 본격적인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엔딩에서는 시간이 흘러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한때 국가를 상대로 싸우던 변호인이 결국 ‘국가에 의해’ 기소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하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자리에 섰는지를. 결국 이 영화는 송우석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정의’라는 보편 가치가 어떻게 한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다시 세상을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서사다.


챕터 1: 도입부 – 송우석의 전환과 초기 갈등

변호인의 도입부는 단순히 한 변호사의 출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1980년대 초반의 사회 구조와 계층 간 긴장을 송우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구간이다. 이 챕터는 그의 배경, 세계관, 그리고 초기 갈등을 통해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이 한 인물의 인생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송우석은 학벌, 배경, 경제력 어느 하나 변호사로서의 엘리트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고졸 출신으로 시작한 그의 법조계 진입은, 그 자체로 ‘시스템을 뚫고 들어간 이단아’적 이미지다. 영화는 이 점을 매우 강조하며 초반부터 그를 둘러싼 시선과 편견을 통해 관객의 감정적 이입을 유도한다. 판사도, 검사도, 심지어 동료 변호사조차 송우석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분위기다. 그는 이를 오히려 실용적 전략으로 되돌린다. “나는 돈 되는 사건만 한다”고 선언하며, 부동산 등기, 세금 신고, 법인 등록 등의 업무를 중심으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 위주로 구성된 그의 삶에는 감정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는 과거 자신에게 국밥 한 그릇을 준 국밥집 아주머니(곽사장)에 대한 인간적 연민은 품고 있지만, 정치적 정의나 사회 정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초기 갈등은 바로 이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송우석은 “법은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며, 법을 수단으로 인식할 뿐 그 본질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가 법을 다루는 방식은 철저히 경제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무관심이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을 정교하게 준비한다. 송우석은 어느 날 곽사장에게 ‘국밥값 대신 법률 자문’을 제공하게 되면서,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윤리가 맞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대가 없는 인간적 호의는 훗날 곽사장이 “진우 좀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송우석의 초기 갈등이 본격화된다. 그는 단순한 업무 위임을 넘어, 감정적 책임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도입부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는 진우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구치소를 방문하는 송우석의 표정이다. 그는 그곳에서 구타와 고문의 흔적을 목격하면서 ‘법률의 공백’과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직시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충격을 넘어서, 자신이 믿어왔던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그는 사건 수임 여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고민은 단지 하나의 사건을 맡을지 말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송우석의 전환은 이 갈등을 계기로 서서히 시작된다. 그는 진우의 사건을 맡기로 결심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싸움에 휘말리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이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송우석은 대단한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이 아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에서 행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정의의 출발점’이다.

결국 이 챕터는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법률 기술자에서 인간적 판단을 내리는 존재로 전환하는 첫 단계로 기능한다. 초기에는 ‘의뢰인의 수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그가, ‘억울한 사람의 권리’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이후 그가 겪게 될 더 거대한 갈등과 윤리적 투쟁의 서막을 알린다.


챕터 2: 충돌부 – 부림 사건과 내부의 윤리 투쟁

영화 변호인의 중심을 이루는 두 번째 챕터는 ‘부림 사건’이라는 실화 기반의 고문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긴장과 충돌의 서사다. 이 구간은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개인적 감정에서 출발한 정의감으로부터, 체계적 불의에 맞서는 윤리적 실천가로 변모하는 전환점이다. 이전 챕터가 감정적 공감에서 비롯된 자각이었다면, 이 챕터는 그 자각이 구조적 억압과 충돌하며 보다 강한 신념으로 굳어지는 과정이다.

사건의 핵심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공안 당국의 권력 남용이다. ‘반정부 서적을 돌려봤다’는 이유로 대학생 진우와 친구들이 체포되고, 가혹한 고문과 회유로 인해 허위 자백을 강요받는다. 이 장면은 영화 내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순간으로, 국가 권력이 개인을 어떤 식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고문 장면은 직접적 묘사를 자제하면서도, 손가락이 부러지고 말이 어눌해진 진우의 모습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한다.

송우석은 이 사건을 맡으며 기존의 세무·등기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직면한다. 그는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고, 피의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합법적 형태를 띤 불법’의 실체를 확인한다. 고문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고, 법정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이며, 검찰과 경찰은 진실보다 체제 유지를 우선시한다. 송우석은 이 과정에서 단순한 분노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체제 내부에서 작동하던 법의 기능이, 지금은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데 대한 깊은 환멸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송우석이 판사를 만나 ‘고문 사실을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판사는 “그런 건 판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암묵적으로 송우석에게 순응을 요구한다. 이는 영화가 묘사하는 체제 내 타협의 논리이자, 많은 법조인들이 ‘정의’보다 ‘질서’를 우선시하던 당시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와 같은 타협과 침묵 속에서, 송우석은 자신이 어느 편에 설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주변 동료 변호사들은 “너만 정의롭고, 우리 다 비겁하단 말이냐”며 그를 몰아세운다. 이 장면은 단지 직업적 갈등이 아니라, 동일한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윤리 기준을 지닌 자들 간의 충돌을 상징한다. 동시에 이는 관객에게도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입장을 취하겠는가?”라는 묵직한 윤리적 호출이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송우석은 변호인의 역할을 넘어, 실질적인 인권 투쟁가로 거듭난다. 그는 단지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 체계 자체를 상대로 싸우는 존재가 된다. 이는 법정 안팎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정보기관의 감시, 협박, 사무실 습격 등은 단지 서사적 긴장 장치가 아니라, 실제 1980년대 공안정국 하에서 진실을 말하려던 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챕터에서 가장 강렬한 연출은 송우석이 변론 중 고문을 입증하기 위해 의사의 소견서, 사진, 증언 등을 하나씩 제시하며 검찰을 몰아붙이는 장면이다. 그는 단순한 팩트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정체를 ‘법의 언어’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한 감정적 호소가 아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반박을 통해 체제 모순을 조명하려는 연출 의도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 챕터는 ‘정의는 위험하다’는 명제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구간이다. 송우석은 영웅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고뇌하고, 흔들리고, 분노하면서도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을 실천하는 보통 사람이다. 그리고 이 보통 사람의 작은 용기가 법정 안에서 거대한 체제와 부딪치며, 진정한 ‘변호인’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이 바로 이 충돌부의 핵심이다.


챕터 3: 절정부 – 법정 대결과 양심의 승리

영화 변호인의 절정은 단연 법정 신이다. 이 시퀀스는 단순한 극적 고조만을 위한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쌓아온 모든 윤리적 고민과 내면적 성장의 종착지이자, 체제의 부조리에 대한 가장 정면의 반박이 담긴 공간이다. 이 장면에서의 승패는 단지 재판의 결과에 있지 않다. 진정한 승부는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옳은 말을 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송우석은 재판 초반부터 압도적인 분위기에 맞선다. 검사는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피고인들의 죄를 기정사실화하고, 판사 역시 검사의 논리를 대체로 수용하는 구조다. 이는 1980년대 한국 사법 체계가 보여주던 전형적 구조를 반영한 것으로, 법의 중립성이 이미 훼손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재판이라는 점을 영화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절정 장면의 연출은 매우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강렬하다. 조명, 음향, 카메라 워킹은 모두 법정의 긴장과 불균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검찰 측에서 국가와 체제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연설을 마친 뒤, 송우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호히 대답한다.

“국가는 국민입니다!”

이 한 마디는 단지 명대사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철학을 응축한 문장이다. 국가라는 개념이 체제 유지나 정치 권력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때 비로소 존재 의미를 가진다는 민주주의적 선언이다. 송우석은 이 말로써 체제의 언어를 국민의 언어로 대체하고, 법정이라는 가장 권위적인 공간을 ‘양심의 재판장’으로 바꿔놓는다.

이어지는 변론은 매우 인상적이다. 송우석은 하나하나 고문의 증거를 제시하고, 진우의 혐의가 얼마나 조작된 것인지를 법적 언어로 논리 정연하게 설명한다. 그는 증언, 사진, 의사의 소견서를 제시하고, 그것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통해 법의 기능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을 더욱 명확히 부각시킨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체제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이중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예상대로 피고인에게 유리하지 않다. 진우를 비롯한 피고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하지만 송우석의 실패는 곧 승리로 전환된다. 그는 법정의 언어로 싸웠고, 그 안에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가 패배함으로써 오히려 정의의 기준이 명확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정의는 이기는 것만으로 입증되지 않는다. 싸우는 그 자체로도 증명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법정 이후 송우석은 체제의 표적이 된다. 그는 감시당하고, 사무실은 압수수색되며,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이 반전은 극적이면서도 냉철하다. 한때 국가는 그를 법의 수호자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법을 지키려는 그를 적으로 규정한다. 이는 곧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메시지, 즉 “진짜 정의는 체제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다.

이 챕터에서 송우석의 변호 활동은 단지 피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인간성, 양심, 법조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그래서 그는 실패해도 당당하고, 패배해도 존경받는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법정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서 있는 변호인의 이미지로 마무리되며, 영화는 다시 묻는다: “이 사회에서 진정한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변호인의 절정은 이러한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지만, 그 물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준 가장 강력한 저항의 방식이자,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 윤리적 유산이다.


총평: 진실을 마주한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기억하게 만든 영화 – 『변호인』

영화 변호인은 단순한 실화 기반의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국가는 국민이다”라는 명제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체현하고, 그것을 대중적 서사로 풀어낸 뛰어난 사회극이다. 양우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실존 인물 노무현의 변호사 시절을 모티프로 하면서도, 다큐멘터리나 정치 전기로 빠지지 않고, 한 인물의 윤리적 각성과 감정의 파동을 중심으로 정제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정치적 호소가 아니라 예술적 완성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연출 측면에서 변호인은 매우 명확하고 직선적인 미장센 전략을 채택한다. 초반부의 밝고 경쾌한 톤은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실용주의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그는 세무 사건과 건축 허가서 같은 실용적 사건만을 맡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성공공식을 만들어가는 인물이다. 이때 카메라는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 넉넉한 몸짓, 그리고 부산 사투리의 활기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며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다.

그러나 부림 사건 이후 영화는 톤이 급변한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공간은 좁아지며, 카메라는 인물들의 표정보다 공간의 압박감을 먼저 담기 시작한다. 법정은 거대하고 권위적인 구조물로 등장하고, 피고인은 작고 연약하게 프레이밍된다. 이러한 연출은 국가 권력과 시민 개개인의 격차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며, 드라마의 핵심 주제를 훨씬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진정성과 감정적 설득력을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축이다. 송강호는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 인생 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초반부의 해학적 인물에서 후반부의 윤리적 결단에 이르기까지, 그의 감정 변화는 과장되지 않고 설득력 있게 이어진다. 특히 법정에서의 변론 장면은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모두 계산된 감정 연기로, 단지 ‘연기’라기보다는 송우석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된다.

김영애, 곽도원, 임시완, 조민기 등 조연 배우들 역시 자기 몫 이상을 해낸다. 특히 곽도원이 맡은 검사 역할은, 단순한 악역을 넘어서 권력의 대변자로서 어떻게 정의를 왜곡할 수 있는지를 체화한 인물로, 서사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임시완 역시 고문 피해자의 불안과 절망을 무력감 어린 눈빛과 표정으로 완벽하게 표현하며, 관객의 감정을 흔든다.

변호인이 가진 가장 강력한 미덕은 ‘정치적 선동’이 아닌 ‘인간적 윤리’로 관객을 설득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에 송우석 같은 인물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정의에 눈뜨고, 자신의 안위를 걸고 진실을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무게가 관객의 내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감정, 그 울림을 통해 사회적 각성을 유도한다.

또한 이 작품은 더 킹, 1987, 남영동 1985 같은 한국 현대사 정치영화들과 비교해도 매우 독자적인 미덕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단일 인물 중심의 심리극’이라는 점이다. 집단운동이나 거대한 투쟁이 아닌, 철저히 개인의 변화와 선택을 중심으로 사건을 조명하기 때문에, 관객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서사에 감정이입할 수 있다. 또한 실존 인물을 지나치게 신격화하지 않고, 인간적 결함과 유머를 갖춘 상태로 풀어낸 점도 이 영화의 설득력을 높이는 요소다.

마지막으로 변호인은 ‘법’이라는 제도를 통과해, 결국 ‘정의’라는 본질적 가치를 되묻는 영화다. 이는 단지 과거 독재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정의는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화두를 관객에게 남기며, 단순한 영화 그 이상의 존재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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